일상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좋은 생각을 탐구하고 다른 사람의 세계와 나누는 일

By recoen2023-09-28

이 글은 트레바리 ‘씀에세이-사람’ 모임에서 작성한 글이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언제나 작가였다. 10년 전부터, 목사를 꿈꿀 때도 디자인을 할 때도 코딩을 하는 지금도 나는 작가를 희망한다.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왜 쓰고 싶은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첫 모임이 끝난 뒤 이 질문이 생겼다. 그저 글쓰기라면 좋다는 마음으로 모임을 신청했지만, 서로 피드백을 나누면서 내가 원하는 글의 방향이 섬세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었을까. 왜 글을 쓰고 싶은가. 어떤 글을 쓰려는가.

언젠가부터 글이 좋아졌다. 나의 독서량과 습관을 본 사람들이 부모님도 책을 좋아하느냐고 묻곤 한다. 지금의 부모님은 책을 좋아하지만, 나의 청소년기부터 그러셨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독서 성향이 내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인생의 노년기에 이르러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고 계신다.

자기계발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해 독서 습관을 얻은 것도 아니다. 억지로 습관을 만들려고 애쓴 적이 없다. 특정한 계기는 있었지만 물이 흐르듯 독서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때로 물은 강하게 흐르기도 하니까.

열아홉 살이었다. 그전까지 평생 열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그 나이를 기점으로 매년 쉰 권이 넘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대학생 때에는 해마다 2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만큼 독서에 빠졌다.

열아홉 살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는 존재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럽게 나를 사로잡은 생각이었다. 나는 고민을 해결해줄 키워드를 따라 책을 검색했고, 그 키워드가 들어간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첫 자발적 독서였다.

그때 처음으로 머리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토록 궁금했던 질문에 답해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의 희열이 나를 사로잡았다. 질문이 간절할수록, 답변이 섬세할수록 전율은 깊어졌다. 답은 거기 머물지 않고 또 다른 질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질문은 새로운 문장을 찾게 했고, 문장은 다시 질문을 낳았다. 어느새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하루 끝에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독서와 사랑에 빠졌다.

독서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 내가 머리를 싸매는 고민을 다른 누군가도 한 적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 고민의 답을 찾아 글로 정리해준 것이 고마웠다. 책은 때로 내가 틀렸다고 말했다. 혼란과 고통 속에서 내 세계가 확장되었다. 때로는 내가 옳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생각과 행동에 용기를 얻었다.

작가의 논리를 따라가기 힘들 때는 이해하기 위해 책을 더럽혔다. 그러고 나면 다른 책이 쉬워졌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했다. 이해하지 못하던 동료도 이해하기 시작했고, 다가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가치 없던 것이 가치 있어지고, 가치 있던 것이 가치 없어졌다. 생각이 바뀌었다. 독서는 내 세계를 바꾸어놓았다.

독서를 향한 사랑의 밀도가 높을수록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선명했다. 많이 읽고 사색할수록 재미있는 통찰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것이 내 삶의 이유라고 느꼈다.

이제야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분명해진다. 나는 좋은 생각을 탐구하고,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

나는 좋은 생각과 좋은 논리를 좋아한다. 글의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좋다. 누추한 문장이어도 그 안의 생각이 고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정의가 있다.

나는 좋은 생각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독서에서 누렸던 기쁨을 나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사람의 세계가 넓어지는 통로가 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주제 /ess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