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편안한 이유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공간
이 글은 ‘용감한 글쓰기 노트’에서 제시된 질문에 대답하는 글이다. 나의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지만, 누군가에게 공감이나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공유한다.
이 장소에 갈 때면 마음이 편해진다
집.
나의 경우에는 집이다. 집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집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일까.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나는 기숙 생활을 7년 가까이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 방문을 열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편히 쉬고 잠을 잘 수 있으니 집과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생각이 달라진 것은 몇 달간 서울에서 살다가 고향의 부모님 댁을 찾아갔을 때였다. 부모님이 계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색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익숙함과 받아들여짐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말하는 익숙함은 단순히 공간에 대한 친숙함이 아니다. 내가 서울에 사는 동안 부모님은 고향 안에서 여러 번 이사하셨다. 그러니 그 집이 물리적으로 익숙한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익숙함을 느낀다. 내게 익숙한 부모님이 사용한 흔적과 냄새가 남은 공간이기 때문일까.
또 하나는 받아들여짐이다. 부모님은 나의 존재를 온전히 환영해주신다. 성과를 잘 내든 못 내든,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오랜만에 집에 온 우리 아들이 예쁘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제야 나는 느낀다. 아, 여기가 집이지.
서울에서 지냈던 기숙사와 자취방은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집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부모님이다. 내게 부모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분들이다. 그런 존재가 있는 공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사회에서 나는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대단하고 성실한 사람인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증명해야만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을 수 있다. 그 과정의 스트레스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집은 다르다.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온전히 사랑해주는 부모님이 계신다. 그래서 집에 갈 때 편안함을 느낀다. 그곳에서 나는 온전히 내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집이라는 공간에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맞아주는 관계가 있다면 그 안에서도 한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온전한 내가 된다.
누구나 이런 편안함을 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편안함을 줄 수는 없을까. 상대를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그 사람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그 사람도 편안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