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하여
관객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사랑만이 취향이 된다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최근 이 성향이 반복해서 발견되는 상황이 있었다. 사실 최근이라기에는 꽤 오래전부터 가져온 거부감인데, 누군가 취향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거부감을 느낀다. 엄밀히 말하자면, 취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취향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내가 굳이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나의 거부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관찰하고 싶어서다.
취향이란 무엇일까. 나의 직관을 따라 정의 내려보겠다. 본인의 감각을 따라 선호하는 것을 추구하다 보니 생겨난 경향성. 그것이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취향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사람들은 왜 취향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자신만의 추구하는 세계가 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동경이 부러운 나머지 나도 취향을 가져보겠다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군집 안에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무엇이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내 안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사람을 동경하는 근원이 무엇일까 내 안에서 찾아볼 때, 그 세계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열정에 나도 감화받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사랑과 반짝이는 눈빛이 멋지다.
동경이 생겼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내 손에 잡히는 것에 빠져들어가고, 그 세계를 사랑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여기에도 불순물이 끼어들 수 있다. 취향을 추구하는 데 관객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나 이렇게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때?
나 이렇게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때?
나도 나만의 추구하는 세계가 있는 사람이다. 어때?
‘취향을 추구하는 나’를 바라보는 관객이 사라진 순간 더 이상 그 취향을 추구할 이유가 없어지는 사람은 진정으로 취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소개하는 대상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의 눈에서는 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관객으로 앉혀놓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는 거짓부렁을 느낀다.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소개하는 사람에게 나는 “그렇군요”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