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듯이 살고 싶다
삶의 사소한 순간마다 의미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
이 글은 트레바리 독서 모임에서 ‘○○하듯이 살고 싶다’라는 주제로 쓴 글이다.
‘○○하듯이 살고 싶다’라는 주제는 꽤나 무겁다. 적어도 나에게는 무거웠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렇게 간단히 대답이 나오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해봤어도 에세이를 쓰는 건 처음이다. 정돈이 필요하다.
나는 언제 ‘살고 있구나’를 느꼈을까. 무작정 떠올려본다.
기름에 촉촉해진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먹을 때,
쏟아지는 잠에 이불을 목까지 덮을 때,
출근길 아침 햇살을 맞을 때,
석 달 만에 엄마의 김치찌개를 먹었을 때,
‘고향 냄새’라는 것이 느껴질 때,
삶의 고민에 답을 주던 책을 만났을 때,
그 답이 필요했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아무래도 독서 모임이니 가장 있어 보이는 것은 ‘삶의 고민’인 것 같다. 이것으로 선택이다.
사실 삶의 고민이라 해봐야 의미의 발견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을 때면 고민이 수그러든다. 바닥에 바르는 시멘트가 하찮고 불만스러운 것은 설계도를 모르는 인부뿐이다. 의미를 아는 사람은 시멘트를 발라도 즐겁다.
나는 의미를 발견하는 삶이 즐겁다. 그 의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감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꽤 자주 설계도를 모르는 인부다.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 하찮고, 오류를 내뱉는 컴퓨터가 지겹고, 출근길 지하철이 피곤하다.
누가 코를 파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나.
아, 시인이다.
이 작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시적 대상이다. 부산물인 코딱지가, 실패한 다이어트가, 버려진 쓰레기가 시가 된다. 이들을 볼 때면 내 삶의 사소한 순간도 시가 될 수 있구나, 하찮은 사물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구나 하는 소망을 본다.
나는 의미를 발견하는 삶이 즐겁다. 시인은 모든 것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시인이 시를 쓰기 위해 취하는 자세는 내가 삶을 대하고 싶은 자세다.
내 꿈은 시인이다.
시 쓰듯이 살고 싶다.
아, 물론 시를 쓸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