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현재에 존재하고 자기 자신이 되며 헌신할 대상을 찾는 삶

이 글은 지난날 트레바리 독서모임에서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쓴 독후감이다.
개처럼 살아라.
한 책에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이다.
개는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존재하는 이 순간에 집중한다.
나는 적지 않은 책을 읽으며 현재에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고,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살 수 없다.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생각을 강조하는 책을 읽고 되새길수록 현재에는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집어든 『소유냐 존재냐』는 ‘존재한다는 것’에 관한 내 생각을 많이 정리해주었다. 동시에 아직 내 생각에는 ‘소유’의 양식이 많다는 사실도 깨닫게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몇 가지를 정리하고 싶다.
1. 학습은 변화를 위해 한다
단순한 지식 습득은 학습의 본질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학습을 통해 사고방식이 변하고, 존재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그 본질이라는 생각이 인상 깊었다.
내가 생각하던 독서의 본질도 이와 같다.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발전이다.
2.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젊은이들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상품’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이 집중하는 방향은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때로 철학이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진실함을 유지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기에 갈망하는 자세다.
언젠가 자본주의가 주체성을 잃게 한다는 글을 읽었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기에 모든 선택과 생각의 조건이 결국 돈이 되어버린다는 이유였다.
이 세계 속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은 시장에게 “내가 바로 당신이 요구하는 사람이오”라고 말하기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아간다. 시장의 요구에 맞춰 자기 자신을 변모하기에 참 자기다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 p.146
자기 자신이라는 가치를 잃고 물질의 가치를 좇는 삶에 행복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자본주의 앞에서 ‘나다움’을 실현하기 가장 적합한 시기는 젊을 때인 듯하다. 돈의 가치를 뒤로하고 나만의 가치를 실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정을 책임져야 하거나 돈을 벌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에서 같은 용기를 발휘하면 오히려 무모함이나 무책임함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시기가 이런 용기를 실현하기에 가장 알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젊은이인데 이 가치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는가? 나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3. 누구에게나 헌신의 대상이 필요하다
모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열정을 사랑한다. 열정적인 사람을 보면 일종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나도 열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에 대하여 열정적일 것인가?”였다.
이 책은 내가 말하는 열정을 ‘헌신’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쓰는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면적인 헌신의 대상, 즉 모든 노력의 초점이 되고 모든 사실상의 가치의 기초가 되는 토대다. 이러한 헌신의 대상이 필요한 이유는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모으기 위해서이며, 온갖 의심과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의 고립된 존재를 초월하기 위해서이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 우리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다.
— p.137
누구에게나 헌신의 대상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 대상으로 삼느냐다. 책은 그것이 소유의 양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단순히 열정적일 수 없었던 이유도 이것이다. 열정적인 삶을 살기 전에 무엇을 향해 열정적일지를 먼저 생각하고 싶었다. 정말 가치 있다고 느끼는 대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다.
책을 읽고 정리한 생각은 이것이다. 존재의 양식에 속하는 무언가를 헌신의 대상으로 발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