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사실이라고 느끼는 패러다임 위에서만 사실이다

과학은 진리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막연한 인상이 있었습니다. 뉴턴이 쌓은 것 위에 아인슈타인이 올라서고, 그 위에 또 누군가가 올라서는 것. 그래서 과학이 다른 학문과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감정이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을 다루는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토마스 쿤은 그 믿음 자체를 패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쿤의 핵심 주장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과학은 누적적으로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이라는 박스 안에서의 퍼즐 풀기라는 것.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정해준 규칙 안에서 문제를 풀고, 그 규칙으로 설명이 안 되는 변칙이 쌓이면 위기가 오고, 위기 끝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새 패러다임은 이전 것 위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이전 것을 대체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학의 발전이 세상의 참 진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관점이 달라질 뿐이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슷한 예로 수학의 공리가 떠올랐습니다.
기하학에서 그것을 논하기 위한 가장 작은 단위인 '점'에 대해서도 합의된 완벽한 정의는 없습니다. 그저 학자들끼리 '이 정도의 정의에서 점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정을 하고 학문을 이어가자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증명된 사실이 아니라 공리, 그러니까 '가정'입니다. 유클리드 기하학 전체가 이 가정 위에 서 있고, 누군가 "평행선은 만날 수도 있다"고 가정을 바꾸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렸습니다. 이것이 패러다임 시프트입니다. 패러다임은 수학의 공리와 같은 것이고, 공리가 바뀌면 그 위에 쌓인 모든 것이 재구성됩니다. 때문에 쿤은 진리를 찾아간다는 누적적 과학관은 없으며, 언제나 패러다임 안에서의 퍼즐 찾기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찝찝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늘"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 전에도 하늘이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지동설에서 현대 우주론으로 넘어가면서 하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 아닌가요? 그런 점에서 과학은 여전히 누적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쿤의 답은 이렇습니다. "하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패러다임에 따라 달라진다고. 천동설의 하늘은 지구 중심으로 천구가 회전하는 완전한 영역이었고, 지동설의 하늘은 태양계라는 역학 시스템이었고, 현대 우주론의 하늘은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팽창 중인 시공간입니다. "더 가까워졌다"고 하려면 도착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 도착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습니다. 이 찝찝함이 아마 "실재론 vs 반실재론"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책이 전달하고 싶은 핵심 주장 외에도 개인적으로 오래 곱씹은 부분은 혁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즘 설득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거든요. 설득이라는 것이 단순히 숫자와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며 어떻게 그것을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중인데요,
쿤 또한 설명한 혁명이 받아들여지는 과정 또한 논리와 증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 전환은 수학적 증명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증만으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 나은 대안이 눈에 보일 때 새로운 세대에게 흥미를 이끌고, 세대의 교체가 일어나는 시점에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됩니다. 이 사실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결국 개인이 아닌 집단도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개인인 인간도 더할 나위 없이 논리적인 흐름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설득에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과학이 사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읽고 난 뒤에는 과학도 인간의 사상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과학의 영역에서조차 패러다임 전환이 논리적 증명이 아니라 공동체의 전향과 세대 교체로 일어난다는 것. 인간 인식의 구조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런 생각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말하는 것, 좋다고 믿는 것은 언제든 어떤 패러다임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느끼는 패러다임 위에서만 사실입니다. 이 문장이 불편하다면, 아마 그것도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일 것입니다.
모임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은 질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패러다임 바깥에서 "참"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믿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패러다임일까요?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변화가 일어난다"는 쿤의 통찰을, 우리 각자의 삶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중에, 다음 세대가 보면 "그때는 그렇게 믿었구나"라고 말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