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노인과 바다

위대한 물고기와 벌인 전쟁에서 노인이 마주한 몰입과 상실

By recoen2022-02-20
노인과 바다

책에 관한 소개이지만 아직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았다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권한다.

간략한 줄거리

또래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책이다. 어부로서 운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노인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다. 이번에는 평생 본 적 없는 거대한 물고기를 만나 사투를 벌인다.

끝내 물고기와의 승부에서 이기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모든 여정은 전쟁과 같다. 그 가운데 노인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 책의 묘미다.

문학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모든 독후감이 그렇겠지만 문학에는 더더욱 답이 없다고 느낀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으로 소설의 대목마다 느낀 바를 나누어본다.

노인의 정신력

읽으며 계속 감동한 부분은 노인의 정신력이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묵직한 감각이 낚싯줄을 통해 전해지고, 배는 물고기에 이끌려 바다 한가운데로 끌려간다. 노인은 늙었고 혼자다. 물고기가 배보다 크다는 사실도 확인한다. 낚싯줄을 당기던 왼손에는 쥐가 나 마비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 좌절감조차 비치지 않은 채 중얼거린다.

왼손의 쥐 따위 해 뜰 때쯤이면 펴지겠지. 나에게는 오른손이 있다. 물고기야, 끝까지 싸워보자!

어떤 악조건도 노인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희망할 이유를 끝까지 찾아내는 강인한 정신력. 노인을 통해 강인함의 한 모형을 얻었다.

죽이고 싶은 나의 형제 물고기

모순이다. 노인은 끝없이 싸우면서도 물고기를 ‘나의 형제’라고 부른다. 나는 그 대목에 공감하면서도 모순을 느꼈다. 왜 죽이려는 물고기를 형제라 불렀을까?

잡아먹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물고기는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크고 위엄 있다. “나는 이 위대한 것과 싸우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일까?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죽이려고 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죽이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모습은 모순이다. 그런데 그 모순이 낯설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내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겠다.

몰입과 어리석은 선택

결과적으로 노인이 물고기와 끝까지 싸운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오랜 세월 어부로 산 사람이 먼바다에서 물고기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상어를 만날 가능성을 몰랐을 리 없다. 온전한 정신이었다면 말이다.

물고기는 배보다 컸기에 옆에 매달아야 했다. 피가 바다로 흐르고, 그것을 따라 상어가 오며, 육지에서 멀수록 더 많은 상어와 마주치는 일은 당연했다. 왜 노인은 그 순간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을까?

정답은 모르지만 추측해본다. 노인은 몰입하지 않았을까?

몰입은 내가 성취할 수 있는 수준보다 조금 높은 난이도에 도전할 때 깊어진다고 한다. 노인은 노련한 어부였고 지금까지 한 번도 잡지 못한 거대하고 위대한 물고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낚았다는 기쁨이었겠지만 실체를 보는 순간 ‘낚시’보다 ‘물고기와의 싸움’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몰입하면 그것이 나인지 내가 그것인지 알 수 없는 물아일체에 이른다고 한다. 노인은 싸움에 몰입하며 물고기와 동질감을 느꼈다. 죽이면서도 마음 아파했고 상어에게 살점이 뜯겨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쓸쓸한 상어와의 싸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어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싸웠다. 물고기의 살점이 한 번 두 번 뜯길 때마다 노인은 가슴 아파했다.

그 아픔은 단순히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팔 수 있는 물고기가 사라진다는 손실 이상의 속상함과 슬픔이었다. 나는 그 감정에 공감했다. 소설에서 가장 격하게 감정을 느낀 대목도 여기였다. 그러면서도 왜 물고기에게 이토록 감정을 이입하는지, 왜 이토록 씁쓸한지 의문이었다.

노인은 큰 소리로 지껄였다. 차라리 그것이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고 너를 낚아 올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고기야, 너에게는 정말 미안하구나. 너를 낚아 올린 것이 애당초 잘못이었어.

노인은 말을 멈췄다. 더는 고기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피 흘린 거죽이 바닷물에 깨끗이 씻겨 거울의 뒷면처럼 은색으로 빛나는 고기의 거대한 몸뚱이를 흘낏 바라보았다. 줄무늬는 아직도 뚜렷했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오지 말아야 했는데 말이야.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전혀 무의미한 일이었어. 미안하구나, 고기야.”

— 『노인과 바다』

배 위의 모든 물건을 동원해 싸우다가 어느새 체념한 노인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한밤중에 몇 번인가 상어 떼가 고기의 뼈를 습격해 왔다. 마치 식탁에서 음식 부스러기를 주우려는 사람 같았다. 노인은 전혀 무관심했다. 키질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노인은 다만 작은 배가 무거운 짐을 잃어버리고 바다 위를 가볍고 순조롭게 미끄러지듯 달리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배는 아무 탈 없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배의 키 손잡이 이외에는 달리 피해가 없었다. 그것은 쉽게 바꿔 달 수 있는 것이었다.

— 『노인과 바다』

결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긴장했다. 물고기를 잡은 낚싯줄과 그것을 붙잡은 노인의 손을 떠올리며 긴장했고, 스멀스멀 몰려드는 상어 떼에 긴장했다. 그 긴장 가운데는 언제나 물고기와 그것을 대하는 노인의 마음이 있었다.

아직도 노인이 물고기에게 느끼는 신비한 감정을 해석하지 못하겠다. 공감하면서도 언어로 풀어낼 지식이 없다. 이 책을 읽은 사람과 그 감정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아직 머릿속에서도 감정 속에서도 설익은 독후감이다.

주제 /Liter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