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오후의 마지막 잔디

잔디를 깎듯 일할 수 있을까

By recoen2026-07-10
오후의 마지막 잔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오랜만에 읽고 싶었다. 최근에 출간된 책인 줄 알고 집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의 작가 생활 초창기에 쓰인 소설이었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책을 다 덮은 뒤에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책은 술술 읽혔다. 나는 아직도 하루키의 소설이 왜 이렇게 잘 읽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데,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일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수월하다.

소설의 의미는 붙잡지 못했지만 몇몇 장면은 남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머문 것은 주인공이 잔디를 깎는 모습이었다.

잔디 깎기는 그에게 돈을 받는 일이었지만, 돈만을 위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잔디깎이로 대충 한 번 밀고 지나가지 않았다. 여러 도구를 사용하고, 기계가 닿지 않는 부분은 손가위를 들어 다듬었다.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잔디의 높이와 모양을 살폈다. 햇살이 잔디 위에 비치고,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일을 하다 잠시 멈춰 준비해 온 아이스커피를 마신다. 수고스러움과 시원함, 느긋함과 만족감이 한 장면 안에 함께 있었다.

그가 잔디를 깎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읽고 있으면 나도 잔디를 깎고 싶어졌다. 나에게도 이렇게 손으로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그 장면이 좋았을까.

요즘은 대부분의 일이 속도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일을 시작하면서도 이미 다음 일을 생각하고, 무엇을 충분히 살펴보기 전에 빠르게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마음부터 앞선다. 그런데 빨리 해내야 한다는 감정으로 가득한 채 무언가를 침착하고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객의 입장에 오래 머물며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어디에서 불편을 느끼고, 무엇을 필요로 할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 정신 속에서 전에 없던 아이디어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속도는 단지 결과물의 완성도만 떨어뜨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의 대상을 충분히 바라보고 만져볼 시간을 빼앗는다. 생각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결론을 재촉하고, 익숙한 답을 빠르게 꺼내게 한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나면 분명 많은 것을 처리했는데도 내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에 비해 잔디 깎기는 손을 움직인 만큼 결과가 눈앞에 남는 일이다. 깎은 곳과 아직 깎지 않은 곳이 분명하게 보인다. 어디를 더 다듬어야 하는지 자기 눈으로 살피고, 손으로 만지고,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잔디가 다시 자라면 그 일은 언젠가 되풀이되겠지만, 적어도 그날의 잔디만큼은 자신의 기준으로 완성할 수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느리게 일하는 삶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일의 대상 가까이에 머물며, 충분히 바라보고 만지면서,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이 눈에 보이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빨리 끝냈다는 사실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잘 해냈다는 감각을 가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일을 느리게 할 수는 없다. 속도가 필요한 순간도 있고, 정해진 시간 안에 답을 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래도 적어도 가끔은 잔디를 깎듯 일하고 싶다. 대상을 자세히 살피고, 손이 닿지 않은 곳을 발견하고, 서두르지 않은 채 내가 만족할 때까지 조금씩 다듬어가는 시간을 되찾고 싶다.

나는 아직도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을 덮고 나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싶은지는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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