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위기
시선과 경청이 사라진 자리에서 서사를 생각하다

현대인의 시간은 연결성 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에 대해 비판하는 책. 요즘의 소식은 선 혹은 그림의 형태가 아니다. 점의 형태로 주고 받고 있다. 점만 존재하는 곳에서는 인간적인 것이 녹아들 구석이 없다는 비판을 하는 책.
나는 저자가 비판하는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들이 나의 내면에 번뜩임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2가지 내용. 시선. 경청.
시선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마르셀 프루스트에게서 영감을 얻은 벤야민은 사물은 자신에게 머무른 시선을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럼으로써 사물은 시선을 가진 상태가 된다. 시선은 사물을 빛으로 감싸는 아우라를 가진 베일을 직조해 낸다." p.81
시선을 머금은 사물은 더 이상 같은 사물이 아니다.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주었기에 애지중지 가지고 다니던 나의 지갑은 더 이상 다른 사물과 같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 편지를 쓰다 잉크가 떨어져버린 펜은 그냥 버릴 수 없는 펜이 되어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시선이 머물게 된 사람. 서로의 서사가 쌓인 관계에는 아우라라는 것이 있다. 그 관계의 가치에는 객관성이 들어설 구석이 없다. 비교라는 행위를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경청
모모라는 책 이야기가 등장한다. 경청을 잘해주는 친구. 모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모모의 경청을 당한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돌아간다.
경청이란 무엇일까.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말을 듣고 있기만 하면 잘 듣는 것일까.
나는 경청의 본질은 만남에 있다고 생각한다. 참된 만남. 참된 만남은 눈 앞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내 생각속의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시선에 갇힌 그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서 숨쉬고 있고, 말하고 있고, 고통받는 그 사람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정신은 끝없이 자신의 선견으로 내 앞의 사람에 대한 상을 만들어버린다. 그렇지만 그 선견을 물리치고 다시 내 앞의 사람을 향해 온전한 만남을 시도하는 것. 내 의식의 표면에 떠도는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의 겉 언어에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헤아리려 할 때, 참된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거기에 경청이 있다. 진짜 저 사람을 들음이 있다. 나는 이런 경청. 만남은 애정으로 이루어진다 생각한다. 애정이 내 의식의 엔트로피를 물리친다. 나의 선견을 옆자리에 옮겨놓고, 이 사람을 이 사람되게. 그의 말을 그의 말 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