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콘텐츠를 감상하는 일과 소비하는 일 사이에서

By recoen2024-04-28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최근 궁금했던 책이다. 여러 사람이 읽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도파민 중독과 쇼츠 중독으로 뇌가 녹아버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무엇이 요즘 사람들로 하여금 영상 콘텐츠를 점점 더 빠르게 보게 할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정말 문제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읽었다.

책은 어떤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서문에서도 “빨리 감기 시청과 작품 감상 사이의 위화감을 표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현대인이 작품을 빨리 감기로 보게 된 원인을 여러 방면에서 살핀다. 사회적으로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라는 외적 요인과 현대인의 심리 변화라는 내적 요인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한다. 강한 주장을 제시하기보다는 저자 나름대로 현상을 분석하고 나열하는 데 초점을 둔 듯했다.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이유와 배경, 앞으로 콘텐츠를 만들 사람으로서 고민해야 할 점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 머릿속에 가장 크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은 문제인가?

공감력을 잃을 가능성

책은 무언가를 강하게 비판하기보다 현상을 분석한다. “이것은 잘못되었고, 그 이유는 이렇다”는 언급은 많지 않았다. 내가 꼼꼼히 읽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 가운데 발견한 우려는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력을 잃을 가능성이었다.

그 흐름은 이렇다.

좋아하는 콘텐츠만 보고 싶다 → 콘텐츠뿐 아니라 장면과 순간 단위까지 좋아하는 것만 골라 본다 → 더 나아가 작품이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원한다 → 작품이 예상을 벗어나면 불쾌해진다.

이 현상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 인물, 예상과 다른 캐릭터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그런 존재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실제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질 가능성을 저자는 우려한다.

나는 그 우려에 꽤 공감했다. 콘텐츠를 대하는 태도가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는 주장에는 논리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직관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좋을 리는 없다. 나는 공감을 중요한 가치로 여겨 덧붙일 말이 많지만 지금의 논점은 아니므로 줄이려 한다.

감상과 소비 사이의 균형

균형 있는 시선도 필요하다. 모든 콘텐츠를 작품처럼 대할 필요는 없다. 목적에 따라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저자도 이와 같이 말한다.

‘감상’의 목적은 행위 자체이다. 모티브나 테마가 숭고한지, 예술성이 높은지 어떤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작품을 접하고, 음미하고, 몰두하는 것만으로 독립적인 기쁨과 희열을 느낀다면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는 다른 실리적인 목적이 수반된다. ‘화제를 따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작품을 보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감상의 태도와 소비의 태도를 상황에 알맞게 취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목적상 빠르게 소비할 콘텐츠를 반드시 감상의 태도로 보는 것도, 하나하나 곱씹을 가치가 있는 작품을 오직 소비의 태도로 대하는 것도 아쉽다.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분별력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C. S. 루이스도 이런 말을 했다.

책을 읽을 때 절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아주 어리석다.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쓸모없는 장이 나올 때 주저 없이 건너뛴다.

독서에 대한 조언이지만 콘텐츠 전반을 대하는 자세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독서만 해도 목적에 따라 방식이 달라진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에서 단순한 정보 습득이 목적이라면 속독할 수 있다. 얻고 싶은 지식이 분명하다면 책의 특정 목차만 읽는 것이 목적에 더 알맞다. 관심 없는 대목까지 꼼꼼히 읽는다고 내용이 머릿속에 남는 것도 아니다. 남지 않을 글을 억지로 읽어 내려갈 이유가 무엇인가.

반대로 문학 작품을 감상하려 한다면 한 문장과 한 장면을 곱씹는다. 특정 사상가의 사고 흐름을 파악하려 한다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장과 장 사이의 연결과 흐름을 계속 살핀다. 독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듯, 영상 역시 목적에 따라 다르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인가보다 먼저 왜인가

사실 이 책은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의 문제는 무엇인가?”보다 “왜 사람들은 빨리 감기로 보는가?”에 더 초점을 둔다. 지금처럼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책의 논점에서 조금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회 전반이 이 현상을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책을 읽으며 내 안의 그 감정을 조금 더 마주했다. 그런 김에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이 독후감을 썼다.

결국 책을 통해 오늘날 사람들이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경향이 커진 이유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현상에 사회적 문제의식이 있다는 내 감정도 발견했고, 그것을 더 밝혀보며 어떤 태도를 취할지 생각했다. 여러모로 유익한 독서였다.

기록해둔 문장들

‘감상’의 목적은 행위 자체이다. 모티브나 테마가 숭고한지, 예술성이 높은지 어떤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작품을 접하고, 음미하고, 몰두하는 것만으로 독립적인 기쁨과 희열을 느낀다면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는 다른 실리적인 목적이 수반된다. ‘화제를 따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작품을 보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그들은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즉 비판이나 지적을 하지 않고, 당하지도 않는다. 이는 언뜻 보기에 ‘타자’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나와 다른 가치관을 접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행위가 결여되어 있다. 관용이 아니라 단지 연결을 피하는 것뿐이다.

독해력이 낮은 시청자도 즐길 수 있는 동시에 깊이 있는 스토리를 즐기고 싶은 사용자도 납득할 만한 다층적인 구조를 지향합니다. 행간에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즐길 수 있게 구성하는 거죠.

그들은 시청률이 올라간 데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지만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자신들 책임으로 여긴다. 지금까지 A 채널을 보던 시청자가 B 채널로 바꾼 경우 B 채널에 보고 싶던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우연히 리모컨을 돌리다가 멈추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A 채널이 지루해서 돌렸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결과적으로 방송국 종사자들은 왜 시청률이 떨어졌는지를 연구하고 시청자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며 대책을 강구한다.

주제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