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일을 미루고 말았다
마감 직전의 몰입보다 초반의 질주와 마지막의 여유를 선택하기

회사 팀장님이 소개한 적이 있는 책입니다. 지나가듯 들려준 ‘계왕권 시간 관리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마감까지 10시간이 남았다면 초반 2~3시간에 계왕권을 발휘해 가능한 모든 일을 끝내고, 후반부에 여유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방법을 만든 사람은 윈도우 95를 개발한 나카지마 사토시입니다. 영어를 잘하지도, 천재적인 실력을 타고나지도 않았지만 시간 관리법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인정받고 많은 돈을 벌게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시간 관리법은 제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벼락치기를 죽도록 싫어했습니다. 마음이 쫓기며 무언가를 할 때 집중력이 높아지기보다 오히려 잃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밤샘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초반부터 계획을 세우고 미리 공부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가장 생산성이 높았고 삶에도 여유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때 추구했던 방법과 닮아 보이는 이 시간 관리법을 저자의 이야기로 직접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시간 관리에 실패한 사람들
책의 첫 부분은 시간 관리에 실패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실력이 좋고 책임감도 있었지만 시간 관리에 실패해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공통점은 ‘여유’를 만드는 방식으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일을 미루다가 마지막에 몰아서 했고, 누군가는 마지막에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주어진 시간 슬롯이 10이라면 10을 가득 채우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슬롯에 여유를 두는 편이 훨씬 높은 생산성을 가져옵니다.
미국의 한 병원에는 수술실이 부족했습니다. 의사를 연장 근무시키거나 수술실을 늘리는 대신, 늘 비어 있는 수술실 하나를 두기로 했습니다. 부족한 수술실을 일부러 비워두는 역설적인 방법을 택하자 수술 횟수가 5% 증가했습니다. 응급 환자가 많아 예정된 수술이 밀리고 의사가 과로하곤 했는데, 빈 수술실에서 모든 응급 수술을 처리하면서 기존 일정이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필요한 심리학적 이유도 있습니다. 여유가 없으면 한 문제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하는 ‘터널링 증후군’이 찾아옵니다. 더 창의적인 방법이나 잘못된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생산성은 떨어집니다.
시간 관리를 위한 세 가지 원칙
-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리스크를 ‘일정 안에 끝내지 못함’으로 정의한다면 가능한 한 초반에 이를 파악해야 합니다. 마무리 시점에 발견하면 마감을 연장하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 큰 그림을 빠르게 그린다. 수정은 반드시 발생한다는 전제 아래 70~80% 완성도의 제품을 빠르게 만들고, 거기에서부터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편이 낫습니다.
- 오차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에 남겨둔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예상과 현실의 오차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로켓 스타트 시간 관리법
저자의 핵심 시간 관리법은 2:8 법칙입니다. 10시간이 주어졌다면 초반 2시간 동안 로켓 스타트를 해 80%의 일을 끝냅니다. 그동안에는 멀티태스킹하지 않고 핵심 작업에만 온전히 몰두합니다.
저자는 이 집중력을 『드래곤볼』의 ‘계왕권’에 비유합니다. 계왕권을 사용하면 본래 능력치의 열 배를 발휘합니다. 초반 2시간 동안 자신의 몸에 오라를 두르고 있다고 상상하며 일하는 것입니다. 이 상상이 꽤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10일이 주어지면 첫 2일 동안 80%를 끝냅니다. 끝내지 못했다면 마감 연장이 필요하다고 상사에게 조기에 보고합니다. 80%를 끝냈다면 3일째부터 하루 단위로 다시 2:8 법칙을 적용합니다. 저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 30분까지 하루 업무의 80%를 끝냈습니다.
업무량은 그날 해야 할 일을 15분 단위의 체크리스트로 쪼개 측정합니다. 8시간을 15분씩 나누면 32개의 업무가 됩니다. 그렇다면 2시간 30분 동안 25~26개의 체크리스트를 마무리한다는 뜻일까요? 책은 여기까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조금 궁금했습니다.
핵심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여유가 생기도록 계획하고, 초반에 2:8 법칙과 계왕권을 사용합니다.
여러 상황에 적용하기
장기 프로젝트라면 전체를 잘게 나눕니다. 100일의 20%인 20일 동안 계속 계왕권을 쓰는 것은 무리입니다. 프로젝트의 단계와 업무를 나눠 10~16일짜리 작은 프로젝트로 만들면 2~3일 동안 집중하는 단위가 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하루를 나눕니다. 세 프로젝트를 하루 12시간 동안 진행한다면 각 네 시간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집중할 시간과 여유 시간을 마련합니다.
덜 급하지만 중요한 일은 계왕권을 사용한 뒤 생긴 여유 시간에 처리합니다.
필요한 공부만 하기
마지막 부분에는 저자가 체득한 자기계발의 팁이 등장합니다. 제 머릿속에 남은 것은 ‘필요한 공부만 하기’였습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상황이 생겼을 때 필요한 만큼 적용하며 공부하고, 여유가 생기면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제게 필요한 조언이었습니다. 저는 늘 원리를 궁금해합니다. 요리할 때도 맛의 원리가 궁금해 요리책을 찾아보고, 공부할 때도 뇌가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궁금해 뇌과학 책을 읽었습니다. 이런 호기심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개발자로 성장하며 학습할 때는 원리를 전부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나, 이것저것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시작한 공부도 있었습니다. 이런 공부는 내려놓아야겠습니다.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그때, 필요한 만큼 학습할 것. 여유가 생기면 진짜 궁금한 것을 공부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것.
책을 다 읽고 나니 정신의 기강이 잡힌 느낌입니다. 최근의 저도 마감이 다가와야 열심을 내는 습관이 있었는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는 읽는 것만으로 아무 효용이 없습니다. 앞으로 실천해야만 제대로 독서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