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유년기를 극복하는 법

유년기를 해석하는 일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알아차리는 일

By recoen2026-07-17
유년기를 극복하는 법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왜 특정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유년기의 모습을 비춰보며 알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뚜렷하게 나에게 해당한다고 느낀 부분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내용은 어느 정도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겠거니 싶은 것들이었다. 유년기의 특정한 장면이 떠오르거나, 지금의 나를 단번에 설명해주는 문장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은 있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네 가지를 기록해둔다.

1. 속물 양육자는 아이에게 성취를 요구한다

책은 속물을 이렇게 정의한다.

“주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는 사람, 그때그때 사회의 주류 집단이 주목하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사람을 뜻한다. 속물의 의견과 취향은 상당히 합리적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내 의견과 취향이 아닐 뿐이다.” p.32

속물 양육자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이들은 아이가 아직 아무런 능력도 드러내지 못할 때에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 아이는 너무 미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이는 속물 양육자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때부터 아이에게는 뛰어난 존재가 되라는 요구가 주어진다. 아이의 성취가 곧 양육자의 자부심이 되고, 아이의 실패는 양육자의 수치가 된다. 이런 요구 속에서 자란 아이에게 성취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다. 인생이 걸린 일이 된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모범생이 되기도 하고, 세속적인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성취를 이룬 뒤에도 존재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취가 멈추는 순간 자신이 사랑받을 이유도 함께 사라질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속물 양육자의 특성과 그 영향이 이어지는 인과의 사슬이 인상적이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고, 한 사람의 행동을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가치 기준 속에서 자라났는지와 연결해 해석해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2. 참자아를 위해서는 규칙을 무시할 수 있는 시기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은 것은 참자아와 거짓자아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거짓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회에는 규범이 있고, 그 규범에 맞추어 행동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년기부터 거짓자아를 요구받는 경우다. 양육자의 감정과 기대에 맞추느라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제대로 된 참자아를 갖기 어려울 수 있다.

“위니콧은 인간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양육자의 감정이나 생각에 구애받지 않는 엄청난 사치를 누릴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p.49

참자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누린 아이는 성장한 뒤 거짓자아를 가져야 할 때에도 참자아의 욕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규칙을 철저히 무시할 수 있었던 사람만이, 필요할 때 규칙을 따를 수도 있다.

나는 이 말이 꽤 와닿았다. 규칙을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누렸기 때문에 오히려 규칙을 따를 수도 있게 된다는 말. 나 역시 유년기를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거짓자아를 많이 요구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성인이 된 지금 참자아에 대한 욕구를 자주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나답다고 느끼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것은 유년기에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뒤늦게 찾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3. 성숙함은 타인을 이상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태도다

책에서 말하는 성숙함은 타인을 전적으로 이상화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태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

이 정의가 좋았다. 이 세상은 흑과 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도 복잡한 존재다. 아주 흰색도 아니고 아주 검은색도 아니다. 좋은 면과 실망스러운 면, 다정함과 이기심, 용기와 비겁함이 함께 있을 수 있다. 그 복잡성을 이해한 채로 상대를 대하는 것. 나는 거기에 성숙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타인을 너무 이상화하거나, 반대로 너무 단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을 볼 때면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깊이 이해한 판단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인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하려는 태도에는 불안정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실망할 수 있고, 실망한 사람을 여전히 사랑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결함을 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숙함이란 어쩌면 이 모순을 견디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4. 정서적 성장은 유대감과 자기표현을 향한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은 것은 정서적 성장의 방향에 대한 설명이다. 인간의 정서적 동력은 두 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더 강한 유대감을 향한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더 강한 자기표현을 향한 욕구다.

우리는 외로움과 수치심, 고립에서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진실하게 교류할 가능성을 찾는다.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지적·창의적 능력을 헤아리고,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 특히 가치관과 쾌락과 세계관을 더욱 깊이 이해하길 원하며, 이를 남들도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형태로 외부에 드러내고 싶어 한다. 자기 직관에 적절한 목소리와 형태를 부여하여 사소하게나마 세상에 유익한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다고 느낀다.” p.85

육체적으로 성장하는 것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성장하고 싶어 하는 동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그 동력이 유대감과 자기표현이라는 두 방향으로 나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떠올리고 나니 내 마음이 어디에서 동력을 얻는지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와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 동시에 내 안에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다. 글을 쓰는 일도, 대화를 나누는 일도 결국 이 두 욕구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이 두 가지가 함께 좌절될 때 나는 정서적인 동력을 잃는다.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고, 내 안의 생각도 바깥으로 꺼내지 못할 때 삶은 빠르게 무채색이 된다.

이 책은 내가 유년기의 특정한 원인을 찾아내도록 도와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게 했다. 나는 과거를 완벽하게 복원해야만 현재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누구와 연결되고 싶은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를 알아차리는 일 역시 나를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과거의 나를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 시절 충분히 갖지 못했던 참자아의 감각을 현재의 삶에서 조금씩 회복하는 일에 가깝다. 타인을 흑백으로 판단하지 않고, 나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단정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와 더 깊이 연결되고 내 안의 것을 세상에 표현하는 것.

지금의 나에게 정서적 성장이란 그런 방향에 있다.

주제 /Psych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