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익명의 권위와 자발성의 상실 속에서 나다움을 되찾는 질문

By recoen2021-12-13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이 글은 ‘나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히 고민하는 사람에게 닿았으면 한다.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는 우리가 무기력을 경험하는 여러 이유를 설명한다. 그 모든 이유를 꿰뚫는 단어는 ‘자아상실’이다.

책을 읽으며 자아를 잃게 만드는 세 가지 요인을 기록했다.

익명의 권위

권위는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다. 의사나 교수처럼 전문성 때문에 인정하는 합리적 권위가 있고, 무능한 상사의 지시처럼 따를 충분한 이유가 없지만 외부의 압박 때문에 복종하는 비합리적 권위가 있다.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처럼 권위의 주체가 드러난 경우는 공개적 권위다. 더 위험한 것은 여론, 시장, 트렌드, 유행처럼 은밀하게 다가오는 ‘익명의 권위’다.

모임에서 모두가 어떤 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대화에 끼기 위해 그 작품을 봐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익명의 권위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돈과 명예, 유행을 향한 욕망도 정말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묻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하지 않은 채 익명의 권위가 제시한 삶을 추구할수록 자기다움은 사라지고, 그 끝에서 무력감을 경험한다.

자발성의 상실

자발성은 외부에 떠밀려 하는 행동의 반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적대적 감정을 버리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식으로 ‘착한 아이’와 ‘멋진 어른’의 감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서 실제로 솟아난 생동감과 상상력을 잃을 수 있다.

아이를 굳이 개성 있다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모든 아이가 아직 사회에 평준화되지 않은 자기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른에게 그 말을 자주 쓰지 않는 이유는 반대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어른이 되면서 서로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의젓한 어른이 되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숙고하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아도 자신을 믿으며, 고립의 위험을 감수하고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가이다.

자아가 살아 있는 사람은 사랑받을 기대보다 사랑할 일을 고민하고, 타인이 내게 거는 기대보다 내가 나에게 거는 기대에 집중한다. 타인에게 매달리지 않는 사람은 자발적이고 살아 있다.

상품이 된 인간

현대인은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설명하며 시장에 자신을 판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기 쉽다. 여기서 자존감이 사랑하고 생각하는 한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역할에서 나온다는 착각이 시작된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패자라고 느끼고, 시장의 변덕에 따라 상품 가격이 움직이듯 자신의 가치도 외부 평가에 맡긴다. 그러나 자아감은 자신을 경험과 사고, 감정과 결정, 판단과 행동의 주체로 느끼는 데서 탄생한다.

내가 나답게 살아 있다는 감각은 시장이 매긴 가격에서 오는가, 아니면 내가 내 삶의 주체라는 경험에서 오는가.

매일 다시 묻기

나다움을 다룬 책을 읽을 때마다 “나답게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익명의 권위에 묻힌다.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욕망도 많았다.

나다운 삶이 쉬웠다면 수많은 철학자가 이 문제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 노력하며 질문해야 한다. 나는 나로 살아 있는가. 내 자아감의 근원은 어디인가. 지금 추구하는 것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인가. 수시로, 가능하면 매일 묻고 싶다.

주제 /Philoso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