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사랑과 자유, 행복과 불행이 서로의 얼굴이 되는 삶

비문학에는 기억하기 위해 밑줄을 그을지 몰라도 소설은 다르다. 문장이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워서 밑줄을 긋는다. 종이 위에 자를 올리고 문장을 가리킨 뒤 굳이 좋아하는 샤프를 골라 줄을 긋는 것은 순전히 감정이 시키는 일이다.
소설책에 밑줄이 많다는 것은 내 감정이 그만큼 요동했다는 뜻이며, 감정이 움직인 사람의 세계관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 책이 그랬다. 읽는 동안 중간중간 책을 덮고 감정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삶의 모순에 공감했다.
이 글은 그 공감점을 언어로 풀어내려는 시도다.
사랑은 거짓말이다
“아직도 그 애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그해 5월 히트한 엄마는 어머니가 아니고, 이모였다. 어린 나는 머리를 쥐어짜다 쌍둥이 이모를 떠올렸고, 이모는 하루 동안 안진진의 엄마 노릇을 하는 일에 대해 무지무지하게 재밌어했다.”
— p.36
안진진은 어머니를 부끄러워한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모를 내세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을 공감과 서글픔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려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안진진도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이모를 소개하고 싶었을까? 그 순간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런 안진진을 바라본 이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모는 정말 재미있었을까? “왜 학교에서는 부모를 초청하는 일이 없을까”라고 엄마는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그것에 대해 어머니가 알게 될까 봐 나는 두려웠다. 어머니가 받을 상처를 염려했다기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해서였다. 잘못했다고, 내가 정말 나빴다고, 흑흑 흐느껴 울면서,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부끄러웠다고 비수 같은 진실을 토로하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고 싶지 않았다.”
— p.37
‘진실을 토로하는 어리석음.’ 안진진은 어머니를 사랑했을까? 어머니가 부끄럽다는 사실과 별개로 사랑하지 않았을까? 부끄러움에서 비롯한 행동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성인이 된 안진진은 “진실은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 p.157
맞다. 안진진은 어머니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당신이 부끄럽다고 말하지 못했고, 당신을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사랑은 때로 솔직하지 못하다.
사랑은 거짓말이고 감옥이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 p.218
사랑하면 진실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이 안진진의 지론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더 나은 나를 보여주려는 욕망이 진짜 나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안진진은 이것을 감옥으로 느꼈다. 아니, 그의 안에 살아 있는 아버지가 그것을 감옥으로 느꼈다.
“저 아래 나이트클럽에서 말야. 안진진이 날 때렸어, 기억 나? 내 뺨을 치고 내 등을 마구 두들겨 팼지. 날 가두지 말라고. 무섭다고 그랬어. 마구 큰소리로 외쳤어. 가두면 죽이겠다고까지 그랬지. 내가 안진진을 그렇게 괴롭혔나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번 물어보자. 안진진한테 나는 감옥이니?”
“감옥? 간수? 내가 그랬다고?”
아,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대사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난동을 부리던 그날 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내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행방불명인 아버지가 내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 p.205
사랑하면 그것에 구속된다는 말에 공감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뜻이고, 그만큼 잘 보이고 싶어진다. 더 나은 나를 보여줄수록 더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안진진은 김장우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 감옥에 갇혔다. 아버지는 가족을 사랑했고 그래서 감옥에 갇혔다.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p.206
사랑을 감옥으로 느낀다는 것은 ‘나는 나’로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욕구를 A, 그렇게 존재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랑을 B라고 하면 A가 클수록 B도 두렵다.
아버지는 종종 집에 찾아와 말했다.
“누구나 다 똑같이 살 필요는 없어, 그렇지? 여보, 내 말이 맞지?”
“누구나 다 똑같이 살 필요는 없는 거야. 그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야. 알겠니? 안진진, 내 말 알겠지?”
— p.91
아버지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이다. 동시에 어머니를 사랑했다. 타인을 향한 사랑이다.
자기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은 함께 성장할 수 없을까?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나다움과 멀어지는 것일까? 사랑과 나다움은 어떤 관계일까? 이런 질문을 남긴 대목이었다.
행복이 불행이고 불행이 행복이다
책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불가사의한 장면이 있다. 어머니의 삶은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데도 활력이 존재한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 p.64
또 다른 불가사의는 이모의 지루함이다.
“그때 나는 이모가 와인잔 속에 입술을 숨기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도 요리는 전반부, 이모의 말대로 나는 정말 심심해진다. 이모도 심심하다는 얼굴이다. 심심하지 않은 사람은 심심한 이모부뿐이다.”
— p.33
표면적으로는 이모의 삶이 더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삶이 불행하다고 말하며 먼저 떠난 사람은 이모였다. 이 모순은 무엇일까?
무엇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의미와 활력을 부여할까? 식상하지만 물질적 풍요가 내면의 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닿는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라는 무의식적 자기 인식, 미래에 대한 소망, 고통 가운데 살아남겠다는 열망, 열등감, 나다움에 대한 갈망 같은 것들이 우리를 움직인다. 움직이는 사람은 살아 있다.
이모의 삶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다. 이모의 내면은 겨자씨 한 알이 아닌데 그를 둘러싼 세상은 겨자씨 하나도 담지 못할 그릇이었다. 존재할 자리를 찾지 못했다. 반면 어머니의 세상은 한없이 풍부하다.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젠 완전히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내게 하고 쉴 새 없이 헛소리를 해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면회를 갈 때마다 도무지 철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들도 어머니의 삶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도왔다. 부쩍 말수가 줄고 홀로 처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나, 안진진의 우울도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준다.”
— p.293
반복해서 말하면서도 모순이다. 이런 것들이 정말 삶에 활력을 준다니.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 p.229
아버지를 사랑하는 가족
읽는 동안 계속 의아했던 것은 가족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자식과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 또한 모순이다.
의아함이 쌓이던 중 진모의 대사가 아버지에 관한 생각에 잠시 머물게 했다.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안 물어? 나, 안 찾았어? 나 취직해서 지방에 내려가 있다고 그래. 거기까지만 말해. 그다음부터는 내가 말할 거야. 나, 아버지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야.”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보다 그리움이 더 많이 묻어 있는 진모의 그 말이 의미심장했다. 나한테 그랬듯이 아버지는 진모에게도 아버지만이 알고 있는 삶의 비밀을 나누어주었던 것일까. 아마 아버지는 그랬을 것이다. 나를 사랑한 방식대로 아들도 그렇게 사랑했을 테니까.
— p.276
사랑은 말과 행동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에 신비로운 측면이 있어 누군가를 강하게 사랑하면 상대도 눈치챌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족들은 자신들을 사랑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우이독경의 인간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 p.22
이렇게 인생을 탐구하며 살겠다고 각오한 안진진은 왜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를 선택했을까?
나영규를 선택하면 이모의 삶을, 김장우를 선택하면 엄마의 삶을 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모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직접 느끼기 전에는 모른다고 말하는 안진진. 어리석은 선택임을 알면서도 직접 겪어봐야 한다고 달려드는 나.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우이독경이다. 그런데 우이독경으로 사니까 삶이 지리멸렬해지지 않는 것일까?
독후감을 쓰고 보니 질문투성이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도 힘들었다. 책이 내게 준 감정은 지금 눈앞에 적힌 글보다 훨씬 컸다. 그 감정이 이 정도의 글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쓰다가 미루기를 반복했다.
이제 더는 제출을 미룰 수 없어 마무리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독서모임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정말 궁금한 책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