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이언 매큐언의 '나 같은 기계들'을 읽고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본격적인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거의 시점에 미래를 그리던 모습이, 바로 오늘날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살아가는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은 분명, 많은 이들이 품고 있는 궁금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번에 읽게 된 책 '나 같은 기계들'은 바로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소설로 풀어낸 책이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저자는 타임스에서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50인의 영국 작가'로 선정되었다. 사실 이런 저자의 명성을 모르고 그냥 책을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서 알게되었는데, '오호, 그럴만한 책이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전 소설에서 느껴왔던 인간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 문학적으로 촘촘히 마련된 구성 덕분에 그런 평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문학에 대한 나의 조예는 아주 얕은 편이다 :-)
책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내 안에 어떤 여운을 만들어낸다던지, 삶에 대한 교훈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조인간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어떤 새로운 관계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 지, 상상력을 자극했으며,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작가의 문체와 구성이 섬세하다고 느껴졌기에 인상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그런 나의 감상을 풀어나가보려한다.
증오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의 탄생
이 세상에 인간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증오를 느끼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동물의 경우, 사랑의 감정, 때로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 집을 어지럽히면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동물에게 증오 혹은 질투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례를 찾지 못했다.
주인공이 순간적으로, 아니 은근하게 지속적으로 기계(아담)에게 질투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담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은 장면에서, 그저 아담을 성적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고 분노하고 질투한다. 이후 아담과의 약속을 통해 그런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순간 순간의 장면속에서 여자친구가 아담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한다는데에서 느끼는 우쭐함과 뿌듯함으로 보아 그는 지속적인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나는 이런식으로 주인공이 기계 혹은 나만의 장난감으로 여기던 ‘아담’을 향해서, 점점 인간에게만 느끼는 감정을 투영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나는 시의 적절히 아담에게 동종의 특권과 의무를 부여했다. 나는 그를 증오했다" p.135
"그가 손목을 더 죄어왔고, 나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조차 아주 작은 신음소리라도 흘려서 '그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썼다." p.186
나는 그것이 미란다의 의견이라고, 오늘 오후 나와 사랑을 나누기 직전에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런 사적인 내용까지 그에게 알린 건 지극히 비열한 이유에서였다. p.201
풀밭 위를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장례식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나는 아담이 더 말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넌 기분이 어때?' p.323
나는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대체 우리가 생명이라고 여기는 것의 경계가 무엇일까? 아담은 생명인가? 하나의 인격인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인간보다 똑똑하지만, 인간만큼 멍청하고 모순적이지 못한 기계
당연히 인간보다 월등한 계산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기계이다. 하지만, 인간만큼 모순적이지 못하다. 이런 차이로 인해 인조인간들은 그들의 생을 견디지 못하고, 자의식을 해체하며 스스로 멍청해지는 길을 선택한다. 이런 장면들은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인간은 적당히 멍청하고, 적당히 악과 공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담처럼 프로그래밍적으로 무조건적인 선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면, 과연 이 세상에서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의 모순, 부조리함, 내 안의 모순과 어설픔을 받아들 일 수 있을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언어를 정의하는 것의 어려움
언어를 정의내리고, 그것을 기계에게 학습시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가령 아담이 주인공의 여자친구(미란다)를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고 하자.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녀와 성적인 관계를 맺기를 추구한다는 것인가? 그녀가 안전하기를 원한다? 그녀가 잘되기를 원한다? 만약 그녀가 안전하게 되기를 추구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안전하다는 것은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담이 정의내린 안전과 인간이 정의내린 안전 사이에 차이가 벌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란다는 감옥에 들어갔다. 미란다를 사랑하는 아담 덕분에, 감옥에 들어갔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언어의 정의가 달라진대에서 발생한 문제다.
사실 이런 언어의 정의를 정돈하는 것은 인간들끼리도 잘 못하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까, 맨날 싸우는 것이다. 각 사람은 언제나 복합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듣고 그 맥락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인데, 그 반대의 현상이 가득하다.
처음 책을 읽고 난 이후에는 그저 재미있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인상깊다고 느끼며 그었던 밑줄들을 한 줄씩 살펴보며, 생각을 정리하면서 새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나만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대화를 나눠볼 만한 주제가 많은 책인 것 같아 흥미로운 토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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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후기 :
이번에 읽게 된 '나 같은 기계들'이라는 책은 트레바리 독서모임 중 '지금-여기-나-읽기'라는 모임에서 읽게 된 책이다. 이 모임은 연중무휴의 사랑이라는 책을 쓰신 '임지은'작가님이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을 중심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인상깊었던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기록해보고자 한다.
예술을 하고자 하는 인간 :
독서모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면, 예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인간의 행위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인지 누구인지, 고대의 철학자가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에 이어, 예시로 나온 것이 시인의 욕구였다.
시인은 자신이 느낀 무언가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단어를 고르고 고른다. 하룻밤을 꼬박새어 하나의 단어를 선정해놓고도, 이것이 내 마음을 썩 표현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 다시 지우개로 지워내고는 새로운 단어를 선택하지만 그것도 완벽히 내 마음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마감일이 되어 시를 제출하면서도, '그 시가 곧 내 마음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여기서 내 마음속에 있는 욕구가 바로 '상상계'이다. 그리고 그 상상계의 욕구를 언어화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내는 것이 바로 '상징계'이다. '상상계'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인간 내면의 날 것, 존재 그 자체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어떤 사물로 표현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인과 소통을 위해 약속을 맺은 어떤 매체를 거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언어'이고 이것을 우리는 '상징계'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상상계'와 '상징계'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내 안에 있는 욕구는 언제나 타인과 약속을 맺은 그 매체 안에서만 표현되는 것이기에, 온전히 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예술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예술에는 필연적으로 좌절이 따라온다. 하지만, 상상계를 온전히 상징계에 담아내고자 하는 그 욕구가 예술을 하게 하는 것이며, 인간으로 살게하는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아담(인조인간)을 왜 만들게 되었을까. 물론, 효율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탄생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독서모임에서 이것이 큰 의미에서 인간이 지닌 예술적 욕구의 발현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인간. 하지만, 상상계와 상징계의 간극은 언제나 존재한다. 인간이 인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사고가 이루어지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내겠다고 하는 것인가.
작가로써의 삶 :
나는 사실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라기 보다는, 일단 천성적으로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이와 연관된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가장 접근성이 있어보이는 일이 작가이기 때문에 이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어찌되었건, 그런 차원에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미 작가로써의 삶을 살고 있는 '임지은'님과 곁에서 대화를 나누고 그의 사고방식을 옅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간혹 독서모임 중, '아 이건 직업병인데요'라고 운을 떼면서 하는 이야기가 내 귀에는 재미있게 들렸다. 그 직업병의 한 가지 사례는 타인의 사고방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피력한다면, 그 의견 자체에 대한 이해를 넘어 저 사람이 어떤 사고과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저런 의견을 내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며, 그러한 자신의 직업병적 사고의 결과를 종종 우리에게 들려주고는 했다. 이런식으로 나는 그녀의 직업병을 엿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번에는 놀러가기를 통해 단 한번의 모임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모임의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나에게는 꽤나 좋은 인사이트를 가져다 주었었고,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 다음번의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