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를 바라보는 눈으로는 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고

세계관을 다루는 책은 대학교 시절부터 좋아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저의 메타인지를 늘려주는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는 이러한 류의 책을 읽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대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습니다.
읽으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지점 세 가지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1. 본다는 행위는 구성되어 있다
책은 "봄(seeing)은 언어보다 먼저 온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봄이 중립적 수용이 아니라 능동적 선택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구성되어 있는 방식대로 볼 수 있는 부분만 인식합니다.
프란스 할스라는 80대 빈곤한 화가가 자신에게 구호금을 주는 권력자들을 그린 초상화 — 거기에는 분명한 계급적 드라마가 있는데, 미술사가는 "조화로운 융합", "잊을 수 없는 대비" 같은 형식적 언어로 그 드라마를 지워버립니다. 같은 그림 앞에서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안 보이는지가, 이미 보는 사람의 프레임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겁니다.
봄의 구성은 이 책을 관통하는 개념입니다. 미술 작품을 보는 방식에서부터 여성이 자신을 인식하는 것, 광고의 시대에 개인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까지, '본다는 것은 구성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봄의 구성'이란 인식의 시작이 세계관 학습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니구나. 내가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만이 정답이 아니구나. 다른 이해도 있을 수 있구나. 이 인식이 가능한 시점부터 세계관에 대한 학습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2. 버거의 시선도 구성되어 있다
버거는 할스의 그림을 보고 그것에 계급적 드라마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책에 설명된 맥락만으로는 그림을 보고 여기에 그런 드라마가 있으며 그게 그렇게 강조될만한 메시지라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버거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고 합니다. 버거의 시선도 구성되어 있으니, 그림을 볼 때 보이는 것이 계급적 맥락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형식은 내용을 결정한다
유화(oil paint)라는 매체는 구조적으로 비물질적인 것을 담을 수 없다고 버거는 말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금욕과 초월을 유화로 그리면, 매체가 그녀를 "탐스러운 여성"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닐 포스트먼이 『죽도록 즐기기』에서 했던 말 — "형식은 내용을 결정한다" — 과 정확히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이 먼저 있고, 내용은 그 형식에 맞게 변형됩니다.
버거는 이 흐름을 7장에서 광고로 이어갑니다. 유화가 "나는 이것을 가지고 있다"를 확인시켜줬다면, 광고는 "이것을 사면 당신은 이렇게 될 것이다"를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영원히 현재가 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봄을 구성받고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보는 방식이 누군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은 미술관이나 광고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전략이 그렇습니다.
회사에서 마차를 개발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올해 우리의 전략은 마차를 더 빠르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선언되면, 사람들은 마차를 더 빠르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제품을 볼 때 "마차가 더 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에만 사고가 갇힙니다. 하지만 "우리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무언가에 집중할 것이다"라고 프레임을 바꾸면, 사람들은 마차에 갇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자동차라는 혁명이 가능해집니다.
버거는 예술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했고, 저는 회사의 전략에 대입해서 생각했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는 방식은 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메타인지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 내가 지금 어떤 사물을 바라보고 있고, 그 사물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 중이라는 것까지 인지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우리의 사고에 주체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